이형민1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분쟁 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의료현장의 법적 위험성을 줄여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중요한 입법이, 의료계와 국민 모두가 만족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너무나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이 문제가 이만큼 해결이 쉽지 않고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의료분쟁 조정법의 개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결국, 의료분쟁이 그만큼 많고 해결의 과정이 어려우며 그 과정과 결과에 모두가 불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의료분쟁이 이리 많은지, 해결과정은 왜 어려운지, 결과는 어떻게 불만인지 정확한 현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우선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는 고소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일본에 비해 100배 더 많다고 함) 형사 고소, 고발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이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질고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와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민사가 아니라 형사고소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분쟁의 형사소송화’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변호사 고용에 돈이 들고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민사소송보다, 경찰이 무료로 수사와 기소를 시켜주는 형사소송이 더 나은 선택처럼 보인다. 또한 형사고소를 통하여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더 많은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대화나 타협, 중재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일단 경찰서부터 향하는 감정적 갈등의 사법화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모욕이나 명예회손도 광범위하게 적용시켜 주다 보니 욕을 먹거나 감정이 상하면 일단 경찰서부터 향한다.
이런 고소고발의 남용은 무혐의에 의한 불기소율이 80%가 넘고, 공권력이 낭비되는 사회적인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한다. 하지만 공권력이나 제도를 통한 분쟁 해결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적인 중재나 시민사회의 갈등조정이라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불신의 누적은 이런 형사소송 말고는 나의 억울함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현실이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다 여기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소송이 많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이러한 '일단 고소하고 보자'는 기조는 의료 현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객관적인 인과관계 분석이나 민사적 합의를 거치기보다, 담당 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상/치사’로 형사 고소부터 하여 압박하는 관행은 이러한 대한민국 특유의 척박한 사법 문화와 깊게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도 당연히 처음에는 우리와 동일한 사회적인 갈등의 과정을 겪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선의의 피해자는 최대한 구제하고 억울한 피의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랐던 것이다. 한정적인 자원인 공권력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드는 ‘법적 해결’보다는, ‘대화와 타협’ 혹은 ‘사회의 중재’에 의한 해결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이런 사적 해결이라는 방식은,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익숙하지도 않기에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행위의 결과를 가지고 ‘업무상 과실치상’을 걸어 형사고소하는 것은,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렵고 억울한 일이다. 실제로 90% 이상의 고소가 무혐의로 종결된다고 하지만, 경찰의 방문과 조사과정 자체가 이미 의료인들에게는 처벌보다 더 힘든 두려움과 공포인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리한 고소고발을 진행하는 이유는, 민사소송과 공권력, 의료인들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바른 근본적인 방향은 이렇다. 형사고소, 고발이 없어도 의료행위 중 발생한 좋지 않은 결과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큼 서로 이해가 되고, 무과실 사고를 의료인에 억지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아도 될 만큼 국가가 충분히 보상해 준다면 억울함이 줄어든 환자들의 묻지마 식의 형사고소, 고발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국민과 의료계와 정부는 서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이번 의료분쟁 조정법의 개정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낙제점에 해당한다. 법의 근본적인 목표는 명확한 정의로 해석과 적용의 논란을 없애고, 확실한 판단으로 억울함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개정은 명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오히려 서로의 억울함을 키울 뿐이기에 분명한 개악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히려 법의 개정을 서두른 정치권과 보건복지부는, 이정도 해줬으니 우리는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거칠고 행정편의적인 법의 개정은 현장을 오히려 망가뜨릴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 이만큼이라도 얻었다는 인식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유리하게 다듬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틀린 말은 아니며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식과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면 어떤 세부조항이 들어간 들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상식도 법으로 기재되는 순간 강제이자 의무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법률로 강제한다고 해도 의사의 양심과 자긍심에 의한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를 강제할 수는 없다. 사회적 신뢰와 전문성의 인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법으로 명문화한다면 의료라는 직업전문성(Professionalism)을 버리고 앞으로는 기술자(Specialist)로 취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에 따른 비용의 증가는 국민들에게 청구될 것이다.
답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잘못된 것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 개정은 시작부터, 문제인식과 세부내용까지 문제 자체가 잘못 출제된 것이다.
공통 질문
1.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되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현장의 체감은 당연히 없습니다. 개정 이후 적극적 진료가 아니라 책임소재의 두려움으로 더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차원에서 “사법리스크”를 공식적 문제로 인정했다는 점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겠습니다.
2.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대한 형사부담 완화 조항이 실제 진료 환경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가질 것으로 보십니까?
-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응급실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면책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피해자가 원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해서 지금과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효과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3. 중과실 기준이 일부 구체화됐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판단 기준으로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 전혀 충분하지 않습니다. 법학에서 말하는 '중과실'과 임상 현장의 '불가피한 판단 오차'는 간극이 너무 큽니다. 응급 상황에서는 환자의 정보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에서 최선의 확률에 베팅해야 합니다. 이를 사후적인 결과론적 시각(Hindsight bias)으로 평가하여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막을 수 있었다"며 중과실로 몰아붙인다면, 결국 생명이 위독한 환자일수록 진료를 꺼리게 되는 역효과만 낳게 될 것입니다.
4. 이번 제도 변화가 필수의료 기피 문제 완화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 사법리스크의 완화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커뮤니티의 반응을 필수의료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필수의료 인력들도 실망과 포기로 현장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필수의료 기피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5. 설명의무 강화와 책임보험 의무화 등 환자 보호 장치 확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환자 보호라는 취지는 공감합니다. 설명의무의 강화는 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충분한 설명인가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양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신뢰의 문제인 것입니다. 신뢰하면 충분한 설명이 되고, 믿지 못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책임보험 의무화는 결국 개인이 책임을 질 것인가 국가가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향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 지금 법률 개정안에는 국가의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제'의 전면 확대입니다. 선의의 목적으로 최선을 다한 필수의료 행위 중 발생한 악결과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면제(면책특권)하고 민사적 배상은 국가가 조성한 기금으로 해결하는 구조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의사들이 처벌의 두려움 없이 소신껏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개인 질문
1. 최근 고위험 산모 장거리 이송 사건처럼 응급 전원 지연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더 참담한 것은 이 같은 일이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사건 자체는 명백한 수용불능 사태입니다. 살릴 수도 있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별병원이나 응급실 차원에서 해결할 수준을 이미 넘어선 일로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2. 응급의료 현장에서 전원 지연이나 수용 불가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단순한 인력 부족 문제인지, 아니면 구조적 전달체계 문제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 본질은 '배후 진료(Definitive care) 능력의 상실'입니다.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를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수술을 집도할 흉부외과, 뇌신경외과,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거나 중환자실(ICU) 병상이 없으면 환자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응급실은 응급치료를 하는 곳입니다. 최종치료의 책임을 응급실이 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이번 고위험 분만산모와 미숙아는 응급치료로 살릴 수 없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과 전문인력이 있어야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전달체계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반복될 것입니다.
3. 환자 상태 악화가 전원 과정에서 발생할 경우 의료진 개인이 법적 책임 부담을 느끼는 정도는 어느 수준입니까?
- 재난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병원 역량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전원을 결정했는데, 이송 도중 환자가 잘못되면 "왜 무리하게 전원했느냐"며 책임을 묻고, 반대로 수용했다가 최종 치료를 못해 잘못되면 "능력도 없으면서 왜 잡고 있었느냐"며 처벌받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지체없이 전원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과도한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 이 문제로 면허를 잃게 되거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형사부담 완화 조항이 응급실 진료 및 중증환자 수용 결정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 오히려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소병원은 진단이나 악화의 우려, 최종치료의 불가능을 이유로 수용성이 더 낮아질 것이고 상급병원 역시 최종치료에 대한 부담 증가로 수용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수용'을 결정하는 순간, 환자의 결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의료진이 자신의 면허와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형사부담을 약간 줄여준다고 한들, 확신 없는 중증환자 수용으로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5. 현재 응급의료 전달체계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권역 조정 시스템, 컨트롤타워, 전원 네트워크, 인력 지원 등)
- 우리는 지속적으로 법적위험성 감소, 과밀화 해결, 취약지와 최종치료 인프라 구축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더해서 전달체계에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의 구축이 시급합니다. 119 유료화를 통한 과수요를 막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의 역할 강화와 급성기 클리닉등 응급실 호환 시스템 구축을 통하여 상급병원 응급실들의 과도한 수요를 억제해야 합니다. 지역의 상황에 맞춘 응급 전달체계를 확립하여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무분담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6. 향후 응급의료 분야에서 사법 리스크를 줄이고 적극적 수용 문화를 만들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제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응급실의 수용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마리안법의 대폭 확대적용이 필요합니다. 응급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린 '선의의 의료적 판단'과 '전원 결정'에 대해서는, 고의가 아닌 한 민·형사상 책임을 완전히 면제하는 법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스템의 실패를 의사 개인의 과실로 치환하는 사법 관행이 끊어질 때, 비로소 응급실이 살아날 것입니다.
2026년 5월 7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이형민